한상우 X 임중경
최초의 최후
1.
나 공안부로 가기로 했다.
상우의 목소리는 덤덤했다. 중경 역시 무던한 목소리와 함께 그의 옆모습을 바라보았다. 확정이야? 그래, 그쪽도 인원이 부족한 건 마찬가지라. 마침 자리도 났고, 또 특기대 출신이라고 하니까 그쪽도 손해는 없겠다 싶었나보지. 부장님이 말을 잘해준 걸 수도 있고. 뭐, 어쨌든. …… 상우의 말 끝이 점점 흐려졌다. 중경에게서 이렇다할 반응이 없던 탓이다. 그러나 상우는 고개를 돌려 중경을 바라보지 않았다. 마치 그대로 목이 굳어버린 것처럼 정면을 바라보며, 목소리만 가벼이 내었을 뿐이다. 전부터, 그래. 그랬잖냐. 다른 곳으로 가고 싶다고. 심리 상담 때도 그랬고, 대장님 찾아가서 몇번 부탁드린 적도, 있었고. 근데 결국 들어주시긴 하네. 난 이대로 짐 챙겨서 나가야 하나 하는 생각까지 했거든. …… 중경아. 임중경? 상우의 말이 채 끝나기 전에 중경은 식판을 들고 자리에서 일어났고, 늘 그렇듯 먼저 뒷모습을 보였다. 상우는 잠시 느리게 멀어지는 뒷모습을 바라보다 제 식판을 챙겨 일어났다. 어쩐지 입 안이 썼다. 예상했던 반응이었으나 실제로 마주하니 목에서부터 쓴물이 올라오는 느낌이 들었기 때문이다. 다른 날이었다면 그런 임중경과의 거리를 좁혀 끝끝내 얼굴을 보았을테지만, 오늘만큼은 그러지 못했다. 보나마나 여느 때처럼 변화 하나 없는 무덤덤한 표정이겠지. 넘겨짚으며 상우는 소리없이 숨을 내뱉었다.
그러니 한상우는 마지막까지도 알 수 없었을 것이다. 공안부로 가기로 했다, 그 한 마디에 일그러졌던 임중경의 눈을.
2.
그날 밤, 중경은 잠을 이루지 못했다. 예상하고 있었던 일인데도 그랬다. 피로 점철된 그 날을 기점으로 한상우는 어그러졌다. 물론 그날 작전에 투입되었던 모두가 그랬다. 누군가는 훈련소에서 목을 매었고, 누군가는 심각한 환청과 환각에 시달리다 결국 의가사 제대 처리되었다. 그 날의 모두가 피해자였고, 그것은 중경과 상우 역시 마찬가지였다. 어느날부턴가 한상우는 과호흡에 시달렸다. 비주기적으로 찾아오는 발작은 때와 장소를 가리지 않았다. 그러나 주로, 프로텍트 기어를 착용하거나 총을 들어 누군가를 겨누어야 할 때 호흡의 속도는 비정상적으로 빨라지곤 했다. 자연히 한상우의 훈련 열외 수가 잦아졌고, 그 날의 사건을 겪었던 다른 이들보다도 의무실을 찾는 횟수가 높아졌다. 사실 종래에는 남은 것이 중경과 상우 뿐이었으니 상대적으로 더 많아보이는 것도 있을 터였다. 세간을 떠들썩하게 만든 그 작전을 지휘한 핵심 대원이 상우 본인이었으니, 특기대를 이탈하지 않은 것만으로도 다행이라 여기기도 했다. 특기대의 창설과 궤를 같이 한 중경 자신도 이렇게 악몽과 환각에 시달리는데, 사격 명령을 내렸던 그는 오죽할까. 다만 그렇다 보니, 중경과 상우는 결코 서로에게 위로의 손길도 말도 건넬 수 없었다. 그 어떠한 말도 위로가 될 수 없음을 알기 때문이었다.
아무리 가까운 사이라 해도 서로의 고독에 대해서는 아무것도 해줄 수 없다. / 은희경, 소년을 위로해줘 | |
하여, 결국 늘 그러하듯 이불을 가지런히 접어두고 담배 한 갑만 챙겨든 채 내무반을 나선 것이다. 혹여 곤히 잠든 동료가 깰까 핸드폰의 플래쉬도 켜지 못한 채 중경은 조용히 건물 밖으로 걸어나갔다. 바깥은 스산했고, 열기 하나 품지 못한 바람이 중경의 뺨을 스쳤다. 중경은 잠시 텅 빈 운동장을 바라보다 느리게 발걸음을 옮겼다. 군데군데 무너지고 금이 간, 고무탄이 관통한 흔적이 수없이 남은 폐건물. 중경과 상우를 비롯한 특기대 대원들이 지겹도록 훈련에 훈련을 거듭한 장소였다. 그러나 특기대 본부에서, 벽을 넘어 바깥으로 나가지 않는 한 몸을 숨긴 채 담배에 불을 붙일 수 있는 곳 역시 이곳이 유일했다. 중경은 건물 초입에 들어서 항공점퍼의 주머니에서 담배를 꺼냈다. 그리고 걸음을 조금씩 늦추며 라이터를 꺼내들었지만, 이내 걸음이 멈추고 담배 끝에도 불을 붙이지 못했다. 익숙한 뒷모습이 보였기 때문이다.
한상우였다.
3.
너도 잠이 안 왔나 보네. 상우가 픽 웃으며 옆으로 조금 물러 앉았다. 중경은 잠시 그런 상우를 바라보다 다시 걸음을 옮겨 그가 내어준 자리에 걸터앉았다. 잊고 있었다. 저만큼이나 그 역시 이곳을 자주 찾는다는 사실을. 그리고, 제 근처 비어있던 하나의 침대를. 제 머리가 어지러워 주변을 제대로 살필 생각도 못했지. 특기대 실격이다, 임중경. 속으로 그리 생각하며 중경은 시선을 내리깔아 상우와 제 발치를 바라보았다. 볼품없이 짓이겨진 꽁초가 두어 대 바닥을 나뒹굴고 있었다. 그 모습을 보니 담배를 피울 생각이 사라져 중경은 손에 들고 있던 담배를 다시 집어넣고, 담배갑 역시 주머니에 집어넣었다. 한동안 둘은 정면을 응시했다. 시선은 평행을 이루었다. 먼저 목소리를 낸 것은 중경이었다.
"언제 가는데."
"내일 아침."
"내일?"
생각보다 빨랐다. 중경은 대번에 얼굴을 찡그리며 다시금 상우를 바라보았다. 이번에도 상우는 중경을 바라보지 않았다. 끈질길 만큼 정면을 바라보고 있었다. 의도적으로 중경의 시선을 피하는 것이나 마찬가지였다. 사실 정해진 거, 좀 됐다. 너 훈련 간 사이에 서류도 제출했고. 얼마 전에 상담 치료 받으러 나갔을 때, 돌아오는 길에… 들르기도 했고. 공안부에. 그래, 말 미리 못한 건 미안하다. 그런데…… 그래. 말 할 타이밍이 안 생기더라. 너도 어떤 상태인지 아니까. 그리고, 나보고 다들 뭐라고 하는지 아니까. 괜히 너한테 말해서 너까지 부담 갖게 하기 싫었고. 제법 길게 자란 앞머리를 쓸어넘기며 상우가 어설픈 웃음을 뱉었다. 그래서, 잠이 안 오더라. 오늘은. 그런데 너는 왜 나왔냐. 내일 오전 훈련 아니야? 상우의 말에 돌아오는 답은 없었다. 얼굴을 돌아봐야 함이 옳으나 상우는 차마, 고개를 돌려 중경의 얼굴을 바라볼 자신이 없었다. 여느 때처럼 무던한 시선이 돌아올까 두려워서였다.
"한상우."
이번에야말로, 중경의 표정은 상우의 생각대로 무던했다. 그러나 목소리는 희미하게 떨리고 있었다. 상우가 그런 중경의 목소리를 알아채지 못할 리가 없다. 라이터를 매만지던 손이 그대로 행동을 멈추었고, 입술을 달싹였으나 무어라 말을 뱉어내지는 못했다. 그러던 사이 중경이 시선을 내리깐 채 나직하게 말을 이었다. … 거기선. 별 일 없었으면 좋겠다. 공안부라면 확실히, 우리처럼 현장에 나갈 일은 별로 없겠지. 넌 머리도 잘 굴리니까, 적응도 잘 할 테고…. 이윽고 중경이 깨물듯 입을 다물었다. 중경과 상우, 특기대 내에서 둘째가라면 서러운 핵심대원들이었으나 전투의 스타일은 확연히 달랐다. 중경이 상황 속에서 주변을 파악하여 즉흥적으로 전투를 이어갔다면 상우는 투입되기 전, 혹은 투입 직후 최대한 주변을 미리 파악한 후 동선부터 퇴로까지 미리 그려두는 작전을 선호했다. 그리고 특기대 내에서는 중경의 방식을 조금 더 선호했다. 그러니 공안부에서는 분명, 잘 하겠지. 그러리라 믿는다. 그러나 왜 이렇게 속이 답답한지는 중경 본인조차 알 수 없었다. 서운함일까? 아니면, 야속함? 원망? 그렇게 무심코 다시금 시선을 들었을 때, 둘의 시선은 그제서야 서로를 마주했다. 일순 상우의 눈이 일그러졌다.
중경의 눈이 젖어 있었기 때문이다.
무심한 목소리로 말할 거였다면 이런 표정이나마 보여주지 말지. 적응도 잘 할 거라며 말로 먼저 보낼 거였다면 이쪽을 바라보지나 말지. 너는 모른다. 너는 아마 영원히, 죽기 전까지도, 죽은 후에도 모를 것이다. 몰라야 한다. 만약 안다면, 너는 이런 눈으로 나를 바라보아서는 안되는 거였다. 너는 차라리 무감해야 했다. 나의 이탈에도 그저 무던해야 했다. 마지막까지 그리 보여야 했다. 내가 너의 무심함을 양분 삼아 여기까지 도망쳤는데. 결코 너는 나와 같은 표정을 짓지 못하리라는 그 믿음 하나로, 나는 겨우 너를 떠나기 직전까지 도달했는데. 젖은 눈이 다시금 내리깔린다. 상우의 일그러진 시선을 피한다. 그리고 던져지는 목소리는,
"너무 늦어서, 붙잡을 수도… 없겠고."
이다지도 유약하다. 너와 내가 특기대의 첫 발을 내딛던 그 순간부터 너는 내게 단 한번도 이런 모습을 보여주지 않았다. 꿈에서도 결코 보이지 않던 이 표정에 한때는 매달렸고, 염원했으며, 또 눈물이 날 정도로 바랐다. 그러나 너는, 이런 표정을 짓고 이런 목소리를 낼 줄 모르는 사람처럼 굴었으면서. 그랬으면서, 이제서야. 처음부터 가능성조차 재고할 수 없도록 나를 무력하게 만들어놓고, 이제서야 나를 이런 표정과 이런 목소리로 대하다니. 상우는 지금 이 순간이 억울해 미칠 것 같았으나 그 감정이 누구를 향해야 할지 알 수 없었다. 사격 명령을 내렸던 한상우 자신? 작전을 내렸던 장진태? 거짓 정보를 흘린 섹트? 원망할 사람을 정할 수 없다는 사실이 미치도록 억울했다. 그리고, 오롯 자신을 향해서만 보이는 저 유약함에, 순식간에 목이 타들어갔다.
입을 맞춘 것은 순식간이었다.
상우의 한 손에 들려있던 담배가 툭하니 바닥으로 떨어지고 네 번째 꽁초가 되었다. 다른 손은 중경의 곧은 뒷목을 감싸 당겼고, 중경은 몸을 앞으로 기울인 채 그대로 상우의 허벅지에 손을 얹어 몸을 지탱했다. 달빛을 받아 한쪽에만 드리워지는 그림자, 그것이 중경의 마지막 시선이었다. 중경은 눈을 감았다. 설명할 수 없는 감정 앞에서 그는 본인이 무력하고 또 한심하게만 느껴졌다. 지금 이 순간을 설명할 수 없다는 것이 더욱 그랬다. 그림자 속 벽에 기대어 중경을 바라보던 소녀들의 눈이 사라진다. 발작의 전초증상처럼 뛰던 심장은 오히려 가라앉는다. 미열이 중경의 뒷목을 감싼 손바닥부터 퍼졌다.
어쩌면 우리는 사실, 서로의 고독을 가장 잘 알기 때문에 어떠한 말도 필요치 않았을지도 몰랐다. 하지만 그 사실을 깨달았다 하더라도 모든 것은 너무 늦어버렸다.
우리는 그 어떠한 것도 되돌릴 수 없었다.
최초의 연인처럼 네 입술에 달게 맺힌 사랑을 나눠 삼킨 이후로
해서는 안 되는 말을 뱉어 버린 이유로 낙원에서 나락으로 가요 이 선율에 1
- 심규선, 촛농의 노래 [본문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