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그의 뒷모습 길게 늘어진 그림자 속에서 세계를 본다.




최성욱 X 노진평


세계를 기억하는 한가지 방식



  검사님. 이제 다시 보지 맙시다. 지겨워 죽겠으니까. 성욱은 책상 너머 단정하게 앉아있던 진평을 두고 먼저 자리에서 일어난다. 정장 자켓은 제대로 걸치지도 않은 채 제가 앉았던 의자를 발로 툭 밀어내고, 사무실에서 나가기도 전에 담배를 꺼내 문다. 진평은 그를 제지하려는 실무관을 손짓으로 만류한다. 진평의 손길은 익숙함이 가득 묻어난다. 성욱의 표정 역시 짜증이 가득 어려 있다. 진평은 그의 뒷모습만으로도 그가 짓고 있는 표정을 그려낼 수 있었다. 쾅, 소음처럼 문이 닫히자 사무실 안의 직원 몇 명이 어깨를 움츠렸지만 진평은 그 소리가 날 줄 알았다는 듯 평온하게 서류를 뒤적였다. 최성욱이 저거 참. 난 놈이에요. 그죠? 성욱의 발소리가 멀어지면 수사관이 질렸다는 듯 혀를 내밀며 고개를 젓는다. 서른도 안된 놈이 가지고 있는 업장이 몇 개야? 이 새끼는 밥 먹고 약만 팔았나... 중얼거리는 목소리를 들으며 진평은 서류를 내려다본다. 흰 종이 위의 검은 글자들이 익숙한 구조로 자리하고 있었다. 진평은 눈을 깜박이며 글자를 내려보다 펜을 내려놓았다. 시간은 다섯 시를 가리키고 있었다. 


  오늘은 다들 일찍 퇴근하세요. 자리에서 일어난 진평이 코트를 집어들어 걸치며 말하면 진평을 제외한 둘이 놀란 듯 고개를 든다. 검사님 무슨 일 있으세요? 웬일로 저희한테 그렇게 말해주시고. 사무관이 어설프게 웃으며 농담을 던지면 진평이 짤막하게 웃는다. 하루쯤은 일찍 들어가서 쉬셔야죠. 여기에 목 매다가 과로로 쓰러져도 누가 알아준답니까. 아직 본격적으로 바빠지기 전이니 다들 퇴근 시간은 잘 챙기세요. 진평의 목소리는 낮고 단조로웠으며 또 몇 번이고 외운 것처럼 자연스러웠다. 하지만 둘 중 누구도 그 유연함을 알아차리지는 못했다. 진평은 먼저 갑니다, 그 말만을 남긴 채 먼저 사무실을 나섰다. 일련의 행동에는 그 어떠한 불순물도 없었다. 몇 번이고 매끄럽게 갈아낸 곡선처럼 모든 것이 자연스러웠다. 


  노진평. 넌 진짜 지겨운 새끼야. 알고 있냐? 성욱이 그리 물으면 진평은 대답 대신 고개를 기울인다. 다시 보지 말자던 성욱은 서원지검 건물 후문 근처 골목에 대놓은 그의 차에 기대 서서 담배를 피우고 있었다. 성욱의 발치에는 볼품없이 몸을 구긴 꽁초가 서너 대 정도 나뒹굴고 있었다. 진평은 그것을 잠시 힐끔 바라보다 담배 연기 사이 그려지는 실루엣으로 시선을 옮겼다. 그 지겨운 새끼 기다리느라 시간을 많이 허비하셨나 봅니다. 그리 말하면 성욱이 인상을 찡그리며 반쯤 사그라든 담배를 떨어트려 구둣발로 짓이겼다. 자갈이 바닥과 비벼지는 소리와 함께 희미하게 올라오던 연기마저 끊겼다. 성욱이 정장 바지 주머니에 양 손을 찔러넣은 채 진평을 바라보았다. 곧 비가 오겠네요. 진평이 그리 말하면 성욱이 이번에는 하늘을 바라본다. 그래. 비가 오겠지. 오늘은.


  오늘 밤에. 나한테 시간 좀 내줘요. 조수석에 앉은 진평이 말하면 성욱이 대번에 얼굴을 찡그린다. 검사님. 내가 검사님이 콜하면 달려가는 따까리야? 아니면 검사님이 내 정부야? 코웃음치며 대번에 거절의 말을 건네지만 진평의 표정에는 별다른 변화가 없다. 성욱이 거슬리는 말을 할 때마다 으레 지어보이는 찡그림도, 난감한 표정도 없다. 마치, 그리 말할 줄 알았다, 는 듯한 표정이다. 성욱은 그 표정이 오히려 더 거슬렸다. 노검사. 나한테 미끼 던져? 물면 좋고 안 물면 두고?


  아뇨. 그럴 위인은 아니죠, 제가. 최성욱 씨가 더 잘 아실텐데. 그럼 왜 되먹지 못한 수작질을 부려대? 검사님 답지 않게. 글쎄요. 사람이 늘 똑같이 굴 수 있나요. 그러는 최성욱 씨야말로, 절 여기서 기다리셨잖습니까. 최성욱 씨 답지 않게. 그 말에 허, 웃어보인 성욱이 주머니에서 담배갑을 꺼내 새 담배 한개피를 입에 문다. 달칵, 매트 블랙의 지포라이터가 불을 붙이면 진평은 그 모습을 흘끔 바라볼 뿐 크게 제지하지 않는다. 그래서, 용건이 뭔데? 담배를 입에 문 채 성욱이 물음을 던지면 진평은 코트 주머니에 양 손을 찔러넣은 채 고개를 기울여 그를 바라본다. 잠깐의 침묵이 둘 사이에 내려앉는다.


  할 이야기가 있어서요.


  미친 새끼. 섹스하자고 할 것 같은 얼굴로 그렇게 말하는 것도 재주다. 성욱은 늘 진평의 금욕적인 모습에 몸이 달았다. 그의 목소리는 단정했고 표정은 위태로웠다. 성욱은 그런 진평을 ■■■■


  오늘 밤이 아니면 안 되거든요.


  짙은 선팅이 된 차 유리를 가림막 삼아 입술이 겹쳐진다. 처음으로 단조로운 구조 속에서 유연하게 헤엄치던 진평의 손끝이 잘게 떨린다. 



  결국 비가 내렸다. 의도적으로 조명을 모두 꺼놓은 진평의 방에 요란한 빗소리가 울려퍼졌다. 구겨진 이불은 한쪽으로 밀려나 진평의 한쪽 다리를 겨우 가렸다. 이따금씩 스쳐 지나가는 자동차 헤드라이트가 방을 비추고 사라졌다. 성욱은 침대가에 앉아 비가 쏟아져 부딛치는 창문을 바라보고 있었다. 습관처럼 입에는 담배를 문 채, 성욱은 핸드폰을 한 손에 들고 시간을 확인하고 있었다. 간다, 라든가 이제 가야 해, 같은 친절한 설명 하나 없이 성욱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진평은 침대에 모로 누워 그런 그의 등을 바라보았다. 또다시 헤드라이트가 방을 비추고 지나갔다. 성욱의 뒤로, 제 위까지 그림자가 드리워지다 어둠에 묻힌다. 


  최성욱 씨. 성욱은 답하지 않는다. 성신동에 가는 거죠. 이번에도 성욱은 답하지 않았다.


  가지 마요. 


  할 이야기가 있다고 했지. 너. 답 대신 성욱은 제 쪽에서 물음을 던진다. 진평은 잠시 침묵을 지켰다. 성욱은 오래 기다리지 않고 바닥에 떨어진 제 셔츠를 주워들었다. 가지 말고 여기 있어요. 재차 진평이 성욱에게 말한다. 용건 없으면 간다. 기다리지 마. 안 올 거니까. 둘은 서로에게 답이 될 수 없는 답을 내어놓는다. 결국 눈을 감는 것은 성욱이다. 성욱은 진평이 어떤 마음으로 저를 만나는지 알 수 없었다. 단순히 몸을 섞는 관계라 하기에 그의 시선이 가끔은 깊었고, 그렇다고 해서 연애놀음 같은 것을 하기에 그는 늘 한발짝 뒤로 물러나 있었다. 성욱은 그것이 선을 긋는 것이라 여겼다. 그래서 그 역시 무던히도 선을 긋고 또 그었다. 비록 그 선을 늘 먼저 넘는 것이 본인이었음에도 자꾸만 그었다. 그렇게라도 하지 않으면 선을 넘다 못해 함께 무너질 것만 같아서였다. 무너지는 것은 있을 수 없다. 그를 ■■■■ 것과는 별개로 성욱은 해야만 하는 일이 있었다. 성신동. 삐그덕거렸던 복수는 이제 마지막 코스를 앞두고 있었다. 그러니 멈출 수 없었다. 


  양 팔로 몸을 짚어 일어나 앉은 진평이, 이번에는 방문 근처에 선 성욱의 뒷모습을 바라본다. 한번 더 헤드라이트가 쏟아져 들어오며 성욱의 등을 비춘다. 적당히 하자. 노진평. 호구잡이도 한두번이지. 할 말 있으면 내일 해. 오늘은 갈 데 있으니까. 그 말을 건넨 성욱이 머리를 쓸어올리고 단추를 잠궜다. 


  내일 당신이 죽는대도? 그 말에 성욱의 손이 멈췄다.


  당신을 만나려면 이 방법밖에 없었어요. 당신의 길은 정해져 있었고, 나는 자유로웠으니까. 출발점에 서서 모든 루트를 확인했으니까. 내가 당신을 만날 수 있는 루트는 오직 이거 하나 뿐이었어요. 연극의 대사를 읊듯 현실감이 느껴지지 않는, 다른 장르의 오디오를 떼어다 붙인 것만 같은 단조로운 목소리에 성욱이 결국 뒤를 돌았다. 어느새 침대가에 걸터앉은 진평이 흰 셔츠를 어깨에 걸친 채 성욱과 시선을 마주했다. 미친 새끼. 성욱이 코웃음치며 진평의 앞에 다가가 선다. 대체 무슨 속셈이야. 노진평. 장르가 바뀐 건 신선한데, 슬슬 재미 없다. 이제.


  당신이 지금 나가면 어딜 갈지 다 안다는 뜻이에요. 뒷조사를 꽤 성실하게 했나 보네, 검사님이. 깡패 새끼랑 뒹굴더니. 그렇다고 치면 안 갈 겁니까? 적당히 하자. 재미 없다고 했을텐데. 내가 말해준다면요.


  성신동 일가족 살해범이 송진석인지 아닌지. 이번에는 성욱의 얼굴이 일그러진다. 



  만약 니 말이 다 사실이면. 성욱의 목소리에 진평이 침묵을 지켰다. 성욱 역시 잠시간의 텀 후에 말을 이었다. 우린 만나지 말았어야 했어. 진평이 말없이 성욱을 바라보았다. 내 인생이 좆창나든 말든 니새끼는 나를 무시하고 지나쳐야 했다고. 내 끝이 어떻게 될 지 알고 있었으면. 누가 개입을 해도 바뀌지 않을 거라는 것도 알고 있었다면. 적어도 구경은 하지 말았어야지. 지금처럼. 내 삶에 끼어들어 잠시 간 좀 보다가, 나 뒤지고 나면 좆같은 결말로 끝난 책 덮은 것처럼 홀가분하게 살다 뒤지시게? 내가 그런 게 싫어서 종교를 안 믿었어요. 어느새 성욱의 목소리는 고해성사에 가까워져 있었다. 


  다 지켜보고 있잖아. 신도들이 기도하는 대가리, 곱게 모은 손, 제발 들어주시라고 끊임없이 중얼거리는 목소리. 근데 아무것도 안 이뤄주잖아. 그냥 보고, 듣고, 끝이라고. 내가 그게 싫어서 고아원에서 절대 종교를 안 믿었어. 하도 믿으라고 지랄하길래 싫다고 반항을 했더니 뺨을 얻어맞았고. 그날 새벽에 거길 나왔어. 담을 넘고. 날 끌어올려줄 생각이 없다면, 다시는 날 쳐다보지도 말라고. 어느새 담배 새 개피가 몸을 태우고 재만 남았다. 진평은 놀람도, 동요도 없이 그의 목소리를 들었다. 마치, 그가 무슨 말을 하려 하는지 다 안다는 것처럼. 그 말을 들을 줄 알았다는 것처럼. 성욱은 그런 진평이 못마땅했다. 그러면서도, 그렇기 때문에 한번도 다른 이에게 꺼내본 적 없는 말들을 입 밖으로 낼 수 있었다. 이래서 사람들이 불상이며 예수상 앞에서 신을 찾는 건가 싶은 생각이 아주 잠시 스쳤다. 우스웠다.


  그렇다고 해서 성욱이 진평의 말을 믿는 것도 아니었다. 믿는다는 말로 표현하기 어려운 이야기들이었다. 성욱은 진석을 쫓고, 사고가 나고, 결국 진상을 알게 되고, 그로 인해 자살할 것이라 진평은 말했다. 시한부 선고를 받으면 이런 느낌일까. 당신은 내일 죽습니다. 더이상 제가 도와드릴 수 있는 게 없습니다. 성욱은 중요한 순간에 늘 무력했다. 다섯살 때 어머니와 누나를 죽인 범인 앞에서 그러했고, 종교를 믿지 않는다는 이유로 뺨을 얻어맞았을 때에도 그러했다. 그리고 지금도, 그랬다. 성욱은 진평의 앞에서 무력했다.


  그래서, 하고 싶은 말이 뭔데. 네가 지금 나를 붙잡고 늘어져도 미래가 바뀌지 않는다면, 굳이 그 말을 내게 꺼내는 이유가 뭐냐고 묻잖아. 성욱의 목소리는 조금 지친 듯 했다. 그 새끼는 우리 아버지한테 사주를 받았고, 우리 아버지는, 엄마를, 죽이라고 했다고. … 사실 어느정도 짐작은, 하고 있었거든. 조사를 해보니 죽기 전에 사망 보험을 존나게 들어놨길래. 그래서. 혹시 했는데. 그래도, 그 새끼를 잡기 전에는 모르는 거니까. 그래서 아닐 거라고, 아니, 맞을 거라고, 늘 그렇게 선 위에서 비틀거리면서 걸었어. 근데 니가 그렇게 말해버리면. 하하, 씨발. 진짜 어이가 없고 허무하네. 성욱은 주머니에서 핸드폰을 꺼내 시간을 확인했다. 부재중 전화가 제법 찍혀 있었다. 거의 민마담과 박선생이었다. 가기로 했던 시간보다 두어 시간은 늦었으니 그 쪽은 아수라장일 터였다. 성욱은 긴 숨을 내쉬었다. 이제는 가야 했다. 


  성욱은 다시 자리에서 일어나 겉옷을 챙겼다. 함께 일어난 진평은 그가 현관에서 구두를 신을 때까지도 성욱을 붙잡지 않았다. 성욱은 그런 진평을 흘끔, 바라보았지만 부러 내색하지 않았다. 성욱은 문득 자신이 죽으러 간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내 헛웃음이 나왔다. 자신이 죽을 것이라는 사실을 모르면서도 성욱은 죽음을 향해 달리고 있었다. 그러니 피차 마찬가지였다. 사실을 알든, 모르든 자신이 시한부라는 사실은 변하지 않았다. 노진평. 성욱의 목소리에 진평이 고개를 들어 성욱을 바라보았다. 자동차 헤드라이트가 거실 베란다를 넘어 성욱의 등으로 쏟아지다 이내 사라졌다. 


  마지막으로 하나만 묻자.


  예. 말하세요.


  넌 왜 날 만나는 쪽을 선택했어. 그 말에 진평이 다시 시선을 내려 성욱의 구두 뒤꿈치를 바라보았다. 성욱은 진평이 답을 내어놓을 때까지 문을 열고 나가지도, 뒤돌아 서지도 않았다. 그저 고요히 눈을 감고 있었을 뿐이다. 당신이 궁금했거든요. 당신이 걸어가는 길을 조금 더 가까이서 지켜보고 싶었습니다. 진평의 말에 성욱이 문 손잡이를 잡은 채 한참 침묵을 지켰다. 신이 있다면 꼭 노진평처럼 말했을 것만 같았다. 결국 성욱은 헛웃음을 지으며 손잡이를 돌려 문을 열었다. 진평은 성욱을 붙잡지 않았다. 내일 봅시다, 라든가, 다음에 봅시다, 혹은 연락할게요, 같은 말도 하지 않았다. 그래서 성욱 역시 그에게 그 어떤 인사도 건네지 않았다. 결국 진평은 성욱이 원하는 답은 해주지 않았다. 씨발. 닫힌 문 앞에 서서 성욱이 나직한 욕지거리를 뱉었다. 그리고 천천히, 아파트를 빠져나갔다.

 


  진평은 불도 켜지 않은 채 소파에 앉아 이제는 헤드라이트도 넘어오지 않는 베란다 밖을 바라보았다. 멀리 보이는 도로에는 몇 대의 차들이 자신이 가야 할 루트를 따라 움직이고 있었다. 저 안에 아마 성욱의 차 역시 있으리라. 헤아릴 수는 없었으나 분명한 사실이었다. 모든 것은 패턴과 구조에 따라 움직이고 있으므로.


  진평은 자신이 진짜 이유를 밝혀도 성욱이 기뻐하지 않을 것이라 확신하고 있었다. 바람에 깎이고 부러지며 날카로운 조각만 남은 그는 결코 그 사실을 받아들이지 않았을 것이다. 내가 널 위해 이 생을 선택했고, 그래서 당신을 살렸고, 결국 당신보다 먼저 죽노라고. 하지만 이것은 내가 선택한 삶이니 당신은 나를 잊어버리고, 어떻게든 살아가라고. 당신은 그렇게 될 거라고. 그런 말을 들으면 성욱은 그 사실 자체를 견디지 못했을 것이 분명했다. 사실, 그렇게 되어 있었다. 그러니 진평은 모든 것을 '숨기기로' 했다. 진평이 이 생을 선택함으로서 성욱은 죽지 않는다. 그러나, 진평은 내일 죽을 것이다. 자신을 제거하라는 오더를 받은 특수 3부의 동료의 차에 치여서. 진평은 이 루트를 선택하기 전부터 자신의 결말 역시 알고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삶을 선택했던 것은 오롯이 성욱을 만날 수 있는 유일한 루트였기 때문이다. 


  그렇게 따진다면, 성욱을 위해 이 생을 선택했다는 것은 조금 어폐가 될 수 있겠다. 결국 내가 당신을 만나기 위함이니 결국은 나 자신을 위해 이 생을 선택했다는 답이 옳을 수도 있다. 그러나 그런 사소한 오류 정도는 대수롭지 않았다. 진평은 성욱이 나간 현관문을 문득 시선에 담았다. 성욱은 이제 더이상 이 집으로 돌아오지 않을 것이다. 성욱은 성신동으로 갈 것이고, 민마담과 박선생을 대동하여 진석이 진범임을 제대로 알아낼 것이다. 믿을 수는 없을 테지만 제가 말해준 진실로 인해 성욱의 마음은 그가 진범이다, 라는 쪽에 기울어질 것이다. 그러니 성욱은 진석의 입으로 모든 진실을 들은 후에도 병원에서 뛰어내리지 않는다. 복수로 점철되었던 그 남자의 인생은 그곳에서 끝나지 않는다. 단 한번도 그에게 ■■■■ 말하지 않았으므로 그는 저를 잊는 데에도 긴 시간을 들이지 않을 것이며, 어떻게든 살아낼 것이다. 진평은 다시금 성욱을 떠올렸다. 어느새 아침이 밝아오고 있었다. 


  너를 만나기 위해 이 모든 일들을 다시 겪으라면, 나는 그렇게 할 거야.¹


  진평은 이번에도 자신의 선택이 틀리지 않았다고 믿었다. 몇 번의 되감기 중, 진평이 성욱에게 ■■■■ 말할 때마다 성욱은 진평의 죽음을 전해듣고 눈물을 흘렸다. ■■■■는 말은 정해진 길을 걸어가야 하는 그에게 있어 유일하게 허락된 자유였다. 진평은 성욱에게 ■■■■ 말할 수도 있었고, 말하지 않을 수도 있었다. 어차피 고정된 미래가 바뀌지는 않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진평이 성욱에게 ■■■■ 말할 때마다 성욱은 힘겨워했다. 그렇기에 진평은 이번에도 그가 원하는 답을 내어놓지 않았다. 그저 몇 번의 되감기와 되풀이를 반복해 그를 만날 수 있다면 그걸로 족했다. 언젠가 이 사실을 알게 된다면 당신은 나를 이기적이라 할까. 진평은 자리에서 일어나 드레스룸으로 걸어갔다. 마지막 출근을 준비할 시간이었다. 






 특수 3부의 비리에 젊고 유능한 검사가 사망했다는 사실에 시민들의 안타까움은 커져가고 있습니다. 


사망한 노 모 검사가 이명득 전 검사장 구속 당시 혁혁한 공을 세운 인물이라는 사실까지 밝혀지면서, 


시민들의 추모가 이어지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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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장강명, 「그믐, 또는 당신이 세계를 기억하는 방식」, 148p , 문학동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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