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실의 행로

정태수 x 이정문

w. 준희

 

 

 

 지겹게도 비가 쏟아졌다. 지치지도 않을 끝없이 쏟아지는 비를, 정태수는 우두커니 성당 공터에 서서 끈질기게도 맞고만 있었다. 경감도, 오구탁도, 박웅철도 저마다의 일이 있어 자리를 비운 성당에는 정문 자신밖에 없었다. 언제나처럼 번째 가운뎃자리에 앉아 정면만을 응시하던 정문이 눈을 감고 창문을 거세게 때리는 빗소리에 귀를 기울였다. 혀를 내두를 만큼 거센 폭우였다. 그리고 안에 정태수가 있었다. 그가 신경을 쓰던 여자, 그리고 그녀의 아이가 결국 죽었다고 했다. 정태수와 대치하던 누군가의 소행이라고 했던가. 사건은 싱거우리만치 일찍 종결되었으나 그에게 가해진 충격은 적지 않은 듯싶었다. 여전히 빗줄기는 잦아들 생각을 않는다. 잠시 고민하던 정문은 마른 입술을 혀로 축이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자리에 서서 뿌옇게 흐린 창문을 바라보다가, 이내 바닥에 아무렇게나 쓰러져 있던 장우산 하나를 집어들었다.


 그리고 잠시 그대로 입구를 바라보았다. 단순히 문을 열고 나가 우산을 씌워주는 문제가 아니었다. 여러가지 생각이 빗소리와 함께 어지러이 머리를 휘돌고 지나갔다. 하지만 생각이 무엇인지 수가 없어 정문은 혼란스러웠다. 우산 손잡이를 고쳐쥐고 가벼운 숨을 내쉬었다. 결국 그는 걸음을 옮겼고, 천천히 손을 뻗어 입구의 손잡이를 잡았다. 그리고 힘을 주어 당기려 , 먼저 문이 열렸다. 빗소리가 순간 귓가에 크게 들려왔다. 문을 것은 새하얗게 질린 비에 젖은 태수였다. 정문이 느릿하게 시선을 들어 태수의 얼굴을 바라보았다. 감정마저 빗물에 씻겨나간 빗물에 젖었는데도 건조한 표정이었다. 태수의 시선 역시 정문을 향했다. 한동안 둘이 아무런 말도 없이 서로를 마주했다.


 먼저 손을 뻗은 것은 정문이었다. 아주 느리고, 천천히, 그의 눈가에 맺혀 있던 빗물을 끝으로 쓸어냈다. 없는 표정으로 그를 바라보던 태수가 입을 달싹이다 결국 다물었다. 그리고는 얼굴을 향해 뻗었던 정문의 손목을 붙잡았다. 놀란 기색은 없었다. 그저 잠시 시선을 옮겼다가, 다시 그를 마주했을 뿐이다. 어느 누구도, 누구 하나도 입을 열지 않았다. 남아있던 물기가 천천히 얼굴선을 타고 흘러 바닥에 , 하는 소리와 함께 곤두박질쳤다. 그리고 소리를 기점으로 태수가 정문의 손목을 붙잡은 손에 힘을 주어 그를 쪽으로 당겼다. 잠시 멈칫하던 정문이 두어 발짝 그가 끄는 대로 이끌렸다. 시선의 거리가 좁혀지고, 얼굴이 가까워진다. 여전히 어느 누구도 서로의 시선을 피하지 않는다.

 

“싸이코.”


 싸이코. 더할나위 없이 그에게 어울리는 호칭이었다. 어느새 이름 대신 저도 모르게 튀어나갈 만큼 익숙해져 있기도 했다. 언젠가 아무도 없는 성당 안에서 낮게 중얼거렸으나 천장이 높아 귓가에 유독 크게 울린 적이 있었다. 태수는 그때 그의 이름이, 조금, 사람을 간지럽게 만든다고 생각했다. 이유는 몰랐다. 그리고 그것은 지금도 마찬가지였다. 하지만 지금 그와 시선을 마주한 지금 그는 이상하게도 그의 이름을 부르고 싶었다. 하지만 입을 열어도 목소리가 나오질 않았다. 울컥이며 없는 감정의 덩어리만 목구멍을 타고 올라오는 같았다. 결국 태수는 얼굴을 일그러트리고 말았다. 하지만 여전히 정문의 표정은 건조했다. 얼굴을 일그러트린 헛웃음을 지으며 태수가 결국 목소리를 짜내어, 그의 이름을 불렀다.

 

“이정문.

“…… 이정문……”


 다시금 불렀다. 쥐어짜듯 가늘게, 조심스레. 그리고 순간 정문의 시선이 일렁였다. 표정은 분명 그대로였으나 계속하여 시선을 마주하던 태수는 알아챌 있었다. 아주 작은 파문, 그것은 없는 감정의 기폭제와도 같았으며, 도화선의 일종인 것도 같았다. 눈을 깜박인 정문이 그대로 뒤로 물러나려 했으나 잡힌 손목은 단단히 그를 붙잡고 있었으며, 오히려 반동처럼 글을 끌어당겼다. 결국 정문의 손에서 우산이 떨어졌다. 비어있던 태수의 반대쪽 손이 정문의 뒷덜미를 손으로 감싸 당겼다. 급속도로 가까워진 얼굴은 맞닿는 말고는 선택지가 없었다. 놀란 정문이 눈을 크게 떴으나 밀쳐내기에는 이미 늦은 뒤였다. 차게 식은 입술이, 의외로 온기를 가진 건조한 입술과 포개지며 미약한 열기를 퍼트려냈다. 이성을 유지하는 것마저도 힘들어 포기한 자에게 남은 것은 본능뿐이었다. 본능이 표출되는 목적지는 태수 본인도 알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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